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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소통 (일상생활에 유용한 소소한 정보통)

마야 문명 본문

역사 와 문명

마야 문명

일류소통 2019. 6. 19. 18:35

 

 

마야의 역사

 

지금의 메소아메리카 (멕시코 중부 ~ 중앙아메리카에 이른 지역)에서 번성했던 문명이다.

 

마야문명의 달력은 3114년에 시작한다.  3114년에 시작하는 달력이 마야문명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최초의 유적은 기원전 18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기원전 3114년은 마야문명이 시작되기 전보다

천년 이상 전의 일이다.

 

 

언어 연대 학적 연구에 따르면 마야족의 조상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작은 부족으로서,

이들이 남진해서 기원전 3000년대 중반에 서부 과테말라 고지에 정착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1000년 사이에 이 부족이 두 어족으로 갈라져 하나는 북서로 

 

진출하여 멕시코만 연안의 아스텍 어족을 형성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으로 나아가 페텐 저지에서 유카탄 지방에 이르러 유카 테크 어족이 되었다.

 

 

거대 도시들이 건설된 것은 고전기라고 불리는 서기 250년 ~ 900년경의 시기로 

 

멕시코 남부와 유카탄 반도 남쪽에 걸쳐 유명한 티칼 팔렌케 코팔 등의 도시들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마야 문자가 만들어진 것도 이 시기로 보이며 변의 다른 문명들과 광범위한 무역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8세기~9세기에 걸쳐 고전기 마야의 도시들은 연쇄적으로 무너지는데 명확한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마야의 쇠퇴에는 8세기경부터 나타난 소빙하기가 1차적으로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일부 도시가 쇠퇴 국면에 접어들어 난민이 발생하고 도시들 간의 교역도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고전기 마야가 몰락한 이후 10세기 ~ 16세기 초까지 유카탄 반도 저지대에서 새로운 도시들이 

 

극소수 나타나 마야 문명을 부흥시킨다. 이를 후기 마야라고 한다.

 

후기 마야의 도시들 역시 스페인 인들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이미 고전기 마야의 도시들처럼 붕괴해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이 침략했을 때 까지도 마야 문명의 기록은 상당수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마야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당시의 일부 스페인 학자들은 마야 문자와 그 발음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마야인들은 스페인인들에게 맞서 싸우다가 많은 숫자가 죽었고, 남은 인구의 상당수도 천연두 등의 전염병으로 희생되면서 마야 문자를 읽는 법 등은 완전히 잊히게 되었다. 

 

또한 마야의 기록 대부분도 스페인 선교사들이 불태우고 말아, 지금 남아있는 마야의 책은 4권에 지나지 않는다.

 

 

 

 

마야의 문명 

 

마야 문명의 뿌리는 일찍이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저지대 메소아메리카에 살던 토착민들에게서 

 

비록 하였는데, '마야'라는 이름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실체가 생긴 건 서기 300여 년부터 이었다.

 

고대 마야 문명은 기원 후 300년 ~ 900년 사이에 발달하였다.

 

이때부터 끊임없는 전쟁과 개발의 역사가 메소아메리카 지대를 지배했다.

 

마야 문명은 천제 관측법과 역법이 매우 발달하였고 특히 마야 숫자가 매우 유명하다.

 

마야 숫자는 0을 사용했으며 20진법을 사용했다. 마야 문자 또한 그 특이한 모양으로 유명하다.

 

마야인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주 수확 작물은 옥수수였다.

 

마야의 상인들은 멕시코만과 카브리해의 다른 부족민들과 교육을 하기도 했다. 

 

 

놀랍도록 진보한 역법, 천문학에 대한 발달된 지식 등으로 보아 

 

사람들에게 한 개의 문명 대국이 조용하고 평화적이며 철학적으로 발달했던 이미지로 자리 잡혀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리스 같은 소도시 국가의 연맹 형태를 갖고 있었으며  그중 가장 뛰어난 자가 '위대한 왕'이라는

 

실질적 지배를 하는 체제였다. 

 

마야는 여러 종족이 이루어진 문명이어서, 마야어는 총 33개의 매우 이질적인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야 문자를 해독할 때에도 어떤 언어인지 구분해야 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대규모로 제염작업을 실시해서, 물고기나 육류를 염장하고 이를 통해 필수적인 영양소를 확보하였고

소금을 교역품으로 저장, 유통하였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하구로부터 약 24km 떨어진 내륙까지도 교역과 물물교환을 위해 방문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마야의 쇠퇴와 멸망

 

후기 마야의 쇠퇴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북쪽 도시는 과도한 개발로 인한 토양 침심, 환경파괴가 중요 원인으로 추정한다. 

 

출토된 동시대 유물에서 영양실조의 흔적과 주요 생산품이었던 옥수수가 자랄 수 없을 정도의 토양 손상을 보였다.

 

마야 문명 후반기에 산림을 벌채하고 건축물에 사용할 재료를 구하기 위해 화전을 한 것도 치명적이었다.

 

숲과 나무가 화전으로 사라져 주요 초식 동물들도 멸종하여 사냥도 할 수 없었다.

 

남쪽의 도시에서는 수로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화전 방식보다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마야 문명은 물이 권력의 상징인데, 수로를 건설,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마야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원인이 심각한 가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석고와 산소 동위원소는 과거의 강우량을 추정하는데 쓰이는 성분인데 이 성분 비율이 높은 것은 

 

강우량이 적어 호수 물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800~950년 심각한 가뭄이 있던 것으로 조사되었고 950년 마야 문명이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마야는 지배층이 전쟁에 몰두하여 여러 도시들이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마야문명의 기록에 따르면 다른 도시를 파괴했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고, 실제로 여러 도시들의 역사가 끊어졌다.

 

과도한 도시개발과 잦은 전쟁으로 인해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근거는 없지만, 도시가 멸망한 후 농민들은 수백 년 이상 도시 주변에서 살았다는 정황상의 증거만 제시된다. 

 

16세기 스페인들이 이 지역으로 왔을 때 천연두가 마야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스페인의 침략을 막을 수 없었다. 

 

 

 

 

마야 달력 그림

 

 

마야 종말론

 

2012년 지구종말론이 나온다. 지구가 멸망할 때 사용할 비상식량과 필요물품들이 판매량이 급증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명했었던 종말 예언이다. 

 

고대 마야에서는 태양은 한정된 수명을 가지고, 태양이 죽으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믿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4번의 태양이 멸망하고, 지금은 5번째 태양의 시대라고 설명한다.

 

마야 달력에 따르면 B.C 3114년 8월 12일에 5번째 태양이 시작하고 2012년 12월 21일에 끝을 맞아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지구 종말론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해당 달력이 끝나면 다음 달력을 사용하면 되기에 애초에 세계 멸망을 예언할 목적으로 달력을 만든 것이 아니고

 

마야의 역법이 서기 2012년에 끝난다는 설로 지구가 멸망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진실은 한 바퀴 다 돈 것뿐이라고 한다.

 

마야인들이  큰 단위가 끝나는 시기마다 큰 행사를 치렀지만 지구 멸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2012년 5월 10일 이후 달력이 발견되었고 5세기의 끝까지만 남은 달력을 보고 지구가 멸망하는 거라고

해석한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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