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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소통 (일상생활에 유용한 소소한 정보통)

중국집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 아니다?? 본문

일상정보

중국집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 아니다??

일류소통 2019. 7. 9. 20:36

 

한국인에게 친숙한 음식 짜장면, 사람들은 짜장면을 파는 음식점을 대부분 중국집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당연히 짜장면은 중국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한국식 짜장면은 중국음식과 거리가 멀다고 한다. 

 

 

짜장면의 기원

 

짜장면의 기원을 살펴보자면 면장에 간을 하여 볶은 뒤 면 위에 얹어먹는 작장면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작장면의 원류는 산둥반도로 콩을 주로 사용한 중국식 면장은 훗날 캐러멜을 사용한 한국식 춘장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짜장면은 황갈색을 띠고 있었다.

 

북경식 작장면은 7가지 정도의 채소 고명과 짠 장을 변위에 올려 먹는 요리이다.

 

북경 지방에서 먹는 자장면은 길거리 음식이나 새참 정도의 음식이었고, 마파두부에 들어가는 두 판장이라는 된장에 돼지고기 비계와 살을 잘게 썰어 볶아서 국수에 넣고 채소를 얹어 먹는 것이라고 한다.

 

면 주위에 재료 접시가 있어 취식자가 재료를 조절하도록 되어 있고 간단하게 오이 정도만 올려놓고 먹기도 하고,

 

소스에서도 한국산 짜장면처럼 달달한 맛이 나지 않고 짠맛이 강하다.

 

한국산 짜장면은 소스에 캐러멜 색소가 들어가 달달한 맛이 난다.

 

한국의 짜장면은 북경식 자장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산동에서 바로 들어온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한다.

 

 

짜장면의 역사

 

1880년대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파견된 청나라 군대의 보급을 위해 들어온 중국인 노동자들은 

 

거리가 가까운 산동성에서 주로 왔는데 이들이 인천항 인근(현재의 차이나타운)에 처음으로 한국의 화교 공동체를 이루었고, 원래 상동성의 가정식이었던 작장면을 1890년대 인천항의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에게 판 것이 시초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진 청나라가 물러날 때 함께 온 일꾼들은 조선 땅에 남게 되었고

 

남은 화교들은 일본인이 몰려든 조선 땅에서 생업을 모색해야만 했다.

 

이때는 정식 식당이 아니라 부두 한편에서 솥단지를 걸어놓고 노점 장사를 하였고, 면도 수타면이 아닌 칼국수였다.

 

1900년대 이전에 이미 인천의 개항장 일대, 차이나타운의 여러 식당에서 짜장면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후에 공화춘의 짜장면이 이름이 알려져서 짜장면의 원조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1세대 화교 출신 요리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공화춘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여러 청 요릿집들에서 짜장면을 판매하고 있었고 누가 원조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문화는 화교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나가사키의 화교들이 여러 가지 해물을 모아서 넣어 짬뽕을 만든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현대식 짜장면

 

1960년대 중반 정부에서 경제 시장의 형태를 조율하기 위해  정가제를 시행하게 되는데

 

이 시행으로 폭리를 취하는 형태의 상거래가 대대적으로 단속되었으며 외국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일부 산업도 단속 대상이 된다.

 

당시에는 화교들을 중싱으로 운영된 중국 요리점들은 기본적인 재료를 수입해왔기에 외화 유출을 빌미로 특히나 

심한 제재를 받았다.

 

이에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한국 내에 농장을 개설하거나 양념 공장을 개설하는 형태로 한국산 재료를 활용하는 

한국식 중화요리의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1967년 식품위생법이 제정되고 화교들이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든 조미료와 

가공 재료들이 식품위생법 조항 중 하나인 "개인 가정을 제외한 판매와 요리를 목적으로 하는 장의 제조에 허가가

필요하다"에 위배되어 단속의 주요 대상이 된다.

 

 

결국 일반인을 상대로 한 유통이 회사의 명운을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짠맛을 기반으로 한 면장의 

판매가 지지부진하여 짠맛을 순화시키기 위해 조미료를 추가하게 되었고,

 

캐러멜 색소를 첨가해 검은색이 된 면장은 원래의 황갈색 면장에 비해 물을 타도 별로 옅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원가절감으로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이유로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검은색 춘장이 유행하자 원래의 갈색 면장은 도태되었다.

 

한국식 면장인 춘장의 색이 검은 것은 이 때문이며 검은색 짜장면이 나타나게 되면서 황갈색 짜장면은 사라지게 되었다.

 

즉, 캐러멜 색소 첨가는 사실 업계의 이기로 생겨난 불필요한 과정이었고 

 

춘장이 유통되던 시기 일부 화교들은 중화요리의 원칙을 내세우며 연합체를 경성하고 

 

바지사장이 아니라 공동 업자로 한국인과 손을 잡고 정식으로 중국식 면장을 제조하였으나 

 

정부는 외국인 자본이 기반이란 이 유료 상표 등록을 불허하였다. 

 

화교들은 정부의 방침에 반발, 정식 상표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유통을 시작하였고 정부는 이들을 

 

밀조업자로 판단, 공장을 폐쇄시켰다.

 

 

면장 제조가 금지되어 결국 춘장을 사용하게 된 화교들은 50여 년 간 천대해 온 한국식 중화요리 개발에 착수한다.

 

게다가 화교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져 자본적으로 쪼들리게 된 요리사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장을 볶을 때 넣는 고기를 줄이고 야채를 섞어 밥반찬과 같은 형태로 만들거나 뼈를 고아 만든 고기 육수를 넣어 국과 비슷한 식으로 양을 늘리는 중화요리와 한국 요리의 기법이 융합된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육수를 섞어 볶은 장이 호평을 받자 면장을 볶는 과정에서 육수에 녹말가루를 풀어 양을 늘리는 방법이 보급되고

이후 이방식이 전국적으로 정착하여 한국식 짜장면이 만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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